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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터장 인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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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길의사 기념센터
인사말
<사단법인 윤봉길의사 기념센터>는 한국 독립운동사에서 가장 큰 획을 그은 윤봉길의사의 업적을 기리고
그 활동을 소개, 선양하기 위해 순수 애국 시민들이 뜻과 힘을 모아 건립한 단체입니다.
윤봉길의사는 일본 제국주의가 중국 대륙을 넘보며 본격적으로 아시아 침략을 위해 일으킨 상해 전쟁터에서
상해파견군 수뇌부와 적장의 무리들을 도륙하기 위해 단신으로 과감히 물통폭탄을 던졌습니다.
1932년 4월 29일 상하이 홍구공원 일본의 천장절 기념식장에서였고 엄연한 대한민국 상해임시정부 한인애국단의 특무공작원 자격이었습니다.
이 홍구공원 거사로 인해 상해임시정부는 기적적으로 회생하였으며 새로운 독립운동의 활로를 찾았습니다.
그래서 이시영 선생은, “우리가 조국을 되찾고 조국 땅을 밟게 된 것이 모두가 윤의사의 덕이요....
갓 난 어린이가(상헤임시정부가) 깊은 연못에 빠져서 금방 가라앉을 위급한 찰나에, 윤의사가 위험을 무릅쓰고 물속에 뛰어들어
이 어린이를 번쩍 건져 구해주었소.”라고 당시의 처지를 감동으로 회고했습니다.
윤봉길의사를 선양하고 기념하는 단체는 현재 서울 양재동 공원의 <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와 윤봉길의사의 고향 예산의 <월진회>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굳이 애국 시민들이 새로운 <사단법인 윤봉길의사 기념센터>를 만든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저희 센터의 일원이 2002년 최초로 윤봉길의사의 순국 장면과 순국 경위,
순국지의 전모를 발굴해 전 국민들께 알렸듯이(일본 방위성자료실의 ‘만밀대일기’) 자료발굴과 현장발굴을 특화하겠다는 것입니다.
(최초로 현장을 발굴한 윤봉길의사가 취직했던 중국 청도의 일본인 세탁소 자리, 순국 전 마지막 밤을 보냈던 일본 가나자와 성 위수구금소 터, 오사카 육군위수감옥 터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둘째, 일본과 중국에 산재한 윤봉길의사에 대한 새로운 자료와 사진, 영상의 발굴입니다. (윤봉길의사가 결코 테러리스트가 아니라는 방증의 당시 육군성과 외무성, 일본신문들의 발굴,
윤봉길의사가 불교 신자였다는 수사기록 등이 여기에 해당하며 다양한 사진과 영상들은 앞으로 계속 발굴, 발표할 예정입니다.)
셋째, 현재 이미 매입된 일본 가나자와시 한·호쿠리쿠 역사 탐방 안내센터와 임대를 준비 중인 중국 상하이의 안내센터를 중심으로 윤봉길의사의 거사와 순국지를 적극 운용하여 현장 안내를 펼쳐나가기 위해서입니다.
넷째, 여기에서 더 나아가 한국과 일본, 한국과 중국의 미래 젊은 세대의 교류를 확장시켜나가기 위해서입니다.
비단 윤봉길의사의 추모에 그치지 않고 1,500 년 이상 이어져 온 일본 호쿠리쿠 지방과의 한일교류 역사를 재 조명하여 한일간의 끈끈했던 문화교류와 두 민족간의 왕래와 만남을 새롭게 복원하는 일입니다.
다섯째, 이에 따른 역사 문화 전시, 역사 세미나, 역사 기록물 발간, 다양한 영상 콘텐츠, 주제에 맞는 역사탐방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위해서입니다.
아무쪼록 다양한 전문가와 역사 기록자들, 특히 젊은 세대의 참여를 촉구하고 아울러 본 센터에 열렬한 응원 보내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상해파견군 수뇌부와 적장의 무리들을 도륙하기 위해 단신으로 과감히 물통폭탄을 던졌습니다.
1932년 4월 29일 상하이 홍구공원 일본의 천장절 기념식장에서였고 엄연한 대한민국 상해임시정부 한인애국단의 특무공작원 자격이었습니다.
이 홍구공원 거사로 인해 상해임시정부는 기적적으로 회생하였으며 새로운 독립운동의 활로를 찾았습니다.
그래서 이시영 선생은, “우리가 조국을 되찾고 조국 땅을 밟게 된 것이 모두가 윤의사의 덕이요....
갓 난 어린이가(상헤임시정부가) 깊은 연못에 빠져서 금방 가라앉을 위급한 찰나에, 윤의사가 위험을 무릅쓰고 물속에 뛰어들어
이 어린이를 번쩍 건져 구해주었소.”라고 당시의 처지를 감동으로 회고했습니다.
윤봉길의사를 선양하고 기념하는 단체는 현재 서울 양재동 공원의 <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와 윤봉길의사의 고향 예산의 <월진회>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굳이 애국 시민들이 새로운 <사단법인 윤봉길의사 기념센터>를 만든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저희 센터의 일원이 2002년 최초로 윤봉길의사의 순국 장면과 순국 경위,
순국지의 전모를 발굴해 전 국민들께 알렸듯이(일본 방위성자료실의 ‘만밀대일기’) 자료발굴과 현장발굴을 특화하겠다는 것입니다.
(최초로 현장을 발굴한 윤봉길의사가 취직했던 중국 청도의 일본인 세탁소 자리, 순국 전 마지막 밤을 보냈던 일본 가나자와 성 위수구금소 터, 오사카 육군위수감옥 터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둘째, 일본과 중국에 산재한 윤봉길의사에 대한 새로운 자료와 사진, 영상의 발굴입니다. (윤봉길의사가 결코 테러리스트가 아니라는 방증의 당시 육군성과 외무성, 일본신문들의 발굴,
윤봉길의사가 불교 신자였다는 수사기록 등이 여기에 해당하며 다양한 사진과 영상들은 앞으로 계속 발굴, 발표할 예정입니다.)
셋째, 현재 이미 매입된 일본 가나자와시 한·호쿠리쿠 역사 탐방 안내센터와 임대를 준비 중인 중국 상하이의 안내센터를 중심으로 윤봉길의사의 거사와 순국지를 적극 운용하여 현장 안내를 펼쳐나가기 위해서입니다.
넷째, 여기에서 더 나아가 한국과 일본, 한국과 중국의 미래 젊은 세대의 교류를 확장시켜나가기 위해서입니다.
비단 윤봉길의사의 추모에 그치지 않고 1,500 년 이상 이어져 온 일본 호쿠리쿠 지방과의 한일교류 역사를 재 조명하여 한일간의 끈끈했던 문화교류와 두 민족간의 왕래와 만남을 새롭게 복원하는 일입니다.
다섯째, 이에 따른 역사 문화 전시, 역사 세미나, 역사 기록물 발간, 다양한 영상 콘텐츠, 주제에 맞는 역사탐방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위해서입니다.
아무쪼록 다양한 전문가와 역사 기록자들, 특히 젊은 세대의 참여를 촉구하고 아울러 본 센터에 열렬한 응원 보내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사단법인 윤봉길의사 기념센터 센터장
김 광 만


